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(문단 편집) ==== 기타 ==== 악단 활동과 병행해 단원들이 꾸려나가는 실내악 활동도 활발한데,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을 따지자면 '베를린 필하모닉 12 첼리스트' 를 꼽을 수 있다. 이외에도 여러 악기 편성으로 구성된 실내악 그룹이 결성되어 있고, 1990년대 후반 부터는 시대 고증에 맞추어 연주하는 [[시대연주]]의 강세를 반영하듯 '베를린 바로크 졸리스텐' 등의 [[시대연주]] 계통 그룹도 인기를 얻고 있다. 단원들의 자존심이 세기로 유명하다. 푸르트벵글러나 카라얀 등 워낙 카리스마가 있는 지휘자 밑에 있었기 때문에 아예 상임지휘자가 없는 빈 필에 비해 순종적인 이미지로 비춰지기도 한다. 옆 동네 빈 필은 상임지휘자가 없고 입단 과정도 꽤 복잡한 만큼 고참 단원들이 주축이 되어 악단의 분위기를 이끌어야 되는 시스템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치지만, 베를린필의 경우 그냥 악단 개개인이 모두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아닌 연주자로써의 자존심과 프라이드가 매우 세다. 거의 단원들의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수준이라 어지간한 지휘자들도 설설 긴다.[* 현재는 좀 덜하지만 80~90년대까지만 해도 객원지휘자가 와서 어줍잖게 악단 휘어잡으려고 했다가는 리허설 현장이 불바다로 변하기 일쑤였으며, 한국의 [[정명훈(지휘자)|정명훈]] 지휘자가 베를린필 모 단원과 리허설 도중 크게 싸우고 그 이후로 베를린필과의 관계가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일도 있다][* 현재는 좀 덜하고 하는데, 요즘 베를린 필 단원들의 찌르는 자존심과 고압적인 자세는 예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. 다만 지휘자들의 리허설 방식 자체가 과거의 권위주의적인 스타일과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단원들과 직설적인 마찰을 빚는 경우는 덜할 뿐이다.] 번스타인도 베를린 필을 처음 지휘하고 단원들의 거만한 태도에 많이 불쾌해했고, 아바도도 임기 내내 리허설 시간에 단원들의 노골적인 항의를 들어야 했다.[* 아바도 취임과 함께 도입한 민주적인 방식이 오히려 깐깐한 지휘자들에게는 장애물이 된 셈. 심지어 상임 지휘자의 재선임이나 신규 영입 투표에서도 단원들의 의견이 엇갈려 논쟁이 발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. 악단의 민주적인 운영 방식과 지휘자의 지도력이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 과정이라는 성격도 있어서, 다른 관현악단들의 운영에도 참고할 수 있을 듯.] 카라얀 역시 자비네 마이어 사건 때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과도하게 갈등을 빚은 감이 있다. 특히 목관악기 단원들의 자존심과 입김이 센 편인데, 베를린 필의 목관악기 수석들은 해당 악기 최고의 명인들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. 자비네 마이어 사건 때 카라얀과 갈등을 주도했던 단원도 대부분 목관 수석 단원들이었다. 반면 훗날 단원들의 인터뷰로 볼 때, 현악기나 금관/타악 파트 단원들의 상당수는 카라얀에 우호적인 경우도 많았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